EP.14 2026. 07. 15

제일 안 팔리는 비싼 옵션이 매출을 바꾼다? — 미끼가격의 경제학

안 팔릴 걸 뻔히 알면서 비싼 메뉴를 하나 더 건다. 정말 통할까 — 그런데 통하는 자리가 아주 좁았다.

제일 안 팔리는 비싼 옵션이 매출을 바꾼다? — 미끼가격의 경제학

카페 메뉴판을 보면 이상한 게 하나 있다. 아무도 안 시킬 것 같은, 제일 비싼 세트. 사장님도 안다 — 그거 잘 안 나간다는 걸. 그런데 왜 안 뺄까.

마케팅 책은 다 똑같이 말한다. "안 팔릴 걸 알면서 비싼 옵션을 하나 걸어라. 그럼 그 아래 중간 상품이 팔린다." 미끼(디코이)를 세워 손님을 중간으로 몬다는 것. 3단 요금제, 컵 사이즈 소·중·대, 코스 A·B·C — 죄다 같은 설계다. 정말 통할까. 원문을 팠다.

22 : 57 : 21
카메라 2개일 땐 50:50
비싼 기종 하나 얹자 중간이 57%
84% → 32%
미끼를 뺐더니 비싼 조합상품
선택이 84%에서 32%로 폭락
91번 中 11번
실물로 실험하니
재현된 건 12%뿐

먼저 통설이 맞는 대목. 1992년 스탠퍼드의 시몬슨과 트버스키가 사람들에게 미놀타 카메라를 고르게 했다. 저가 X-370(약 170달러)과 중가 맥섬(약 240달러) 둘만 놓으면 선택이 정확히 50 대 50으로 갈렸다. 여기에 아무도 안 살 법한 최상위 기종(약 470달러)을 하나 더 얹었다. 그러자 선택이 22 : 57 : 21로 바뀌었다. 방금 반반이던 중간 기종이 혼자 57%를 먹었다. 비싼 놈이 옆에 서자, 중간이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인 것이다.

더 유명한 건 행동경제학자 애리얼리가 소개한 이코노미스트 구독 실험이다(MIT 학생 100명 대상 강의실 실험으로, 동료심사를 거친 논문은 아니다). 웹 59달러 / 인쇄 125달러 / 웹+인쇄 125달러 세 개를 놓으니 84%가 조합 상품을 골랐다. 인쇄 단독(125달러)은 아무도 안 골랐다 — 딱 미끼였다. 그 쓸모없어 보이는 미끼를 치우자, 조합 상품 선택이 32%로 주저앉았다. 미끼 하나가 매출의 절반을 만든 셈이다.

비싼 미끼는 팔려고 거는 게 아니다. 옆의 상품을 합리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거는 것이다.

여기까지면 완벽한 무기다. 그런데 2014년, 판이 뒤집혔다. 프레드릭 연구팀이 똑같은 실험을 종이 위 숫자가 아니라 실물과 사진으로 다시 해봤다. 아파트 사진, 진짜 과일, 직접 맛본 음료, 실제 팝콘… 실물에 가까운 19개 실험 전부에서 미끼 효과가 사라졌다. 어떤 경우엔 오히려 미끼 옆 상품을 고르는 역효과까지 나왔다.

같은 해 양과 린은 더 냉정한 숫자를 냈다. 미끼 효과를 재현하려 한 91번의 시도 중 신뢰할 만한 효과는 11번, 약 12%뿐이었다. 더 놀라운 건 원 실험을 처음 만든 당사자들조차 2014년에 인정했다는 것이다 — "엄격한 형태의 미끼 효과는 실제 시장에서는 드물게 나타난다." 교과서 속 그 극적인 숫자들은, 대개 강의실 종이 위에서만 살아 있었다.

Scout's Angle

그럼 미끼는 가짜인가. 아니다. 딱 한 군데, 진짜 매장 데이터로 통한 곳이 있다. 2020년 학술지에 실린 온라인 다이아몬드 판매 분석이다. 캐럿·컷·가격이 숫자로 나란히 비교되는 그 화면에서, 미끼가 끼자 목표 다이아몬드 판매가 1.8~3.2배로 뛰었고 업체 총이익이 14.3% 늘었다. 실험실 밖에서 미끼 효과가 확인된, 사실상 유일한 사례다.

차이는 하나다. 손님이 옵션을 표로 나란히 놓고 숫자로 비교하는 구조. 용량·요금·스펙처럼 딱 떨어지는 숫자 상품에서만 미끼가 산다. 반대로 맛·분위기·기분으로 고르는 것들 — 실물 실험에서 효과가 죽은 바로 그 영역 — 에선 미끼가 안 통하거나, 거꾸로 '계산적으로 군다'는 인상만 남긴다.

지난 편 댓글에서 한 분이 정확히 짚었다. 9,900원이 하도 남발되니 이젠 '이벤트 상품' 느낌이고, 고급은 오히려 딱 떨어지는 만 원이 더 강해 보인다고. 맞다. 감성·고급 쪽은 잔가격이나 미끼 장난보다 반올림가가 낫다는 연구(와드와·장 2015, 쾌락재 한정)도 있다. 미끼는 만능 스위치가 아니라, 숫자로 비교당하는 상품에서만 켜지는 전술이다.

소상공인 · 마케터라면

  • 숫자로 비교되는 상품에만 걸어라 — 용량, 요금제, 데이터량, 페이지 수처럼 옵션을 표로 늘어놓고 따지는 품목. 맛·분위기로 고르는 메뉴엔 효과가 약하다.
  • 미끼는 진짜 안 팔려야 미끼다. 원 실험에서 미끼가 실제로 선택된 비율은 2%였다. 어중간하게 매력적이면 손님이 그걸 사버려 설계가 무너진다.
  • 미끼는 밀고 싶은 중간 상품 바로 위에 둔다. 중간을 '합리적 타협'으로 보이게 하는 게 목적이지, 미끼 자체를 팔려는 게 아니다.
  • 남발은 금물이다. 손님은 학습한다. 늘 '한정·특가·상위플랜'이 붙으면 가격 장난으로 읽혀 신뢰가 깎인다.
  • 고급·감성 라인은 반대다. 잔가격·미끼보다 딱 떨어지는 반올림가가 더 '제값'처럼 보인다.

당신 가게 메뉴판에도 '안 팔리는 비싼 옵션'이 하나 있나요? 그게 옆 메뉴를 밀어주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자리만 차지하는지 — 겪은 걸 댓글로 들려주세요. 사례가 모이면 국내 편으로 잇겠습니다.

#미끼가격#디코이효과#타협효과#가격전략#소상공인#마케팅#가격심리#메뉴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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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줄 그은 정가부터 본다 — 앵커링의 경제학

댓글 1

마케팅베이스 2026.07.15 10:38
일반적인 경우는 최상급이 미끼로 들어가는군요. 저는 마케팅 개념에는 고급 상품이 잘 구성되어 있다면 무리해도 누군가는 구매한다. 인데. 위 내용대로면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