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냉장고 앞에서 자주 본다. 9,900원. 만 원이 아니라 9,900원. 딱 100원 차이인데, "만 원짜리"라고 하면 손이 멈칫하고 "9,900원"이라고 하면 슬쩍 집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이 100원짜리 착시를 심리학자들은 오래 파왔다. 그런데 파고 보니 이건 '100원 싸서' 생기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무 가격에서나 통하는 것도 아니었다.
100원 차이인데 '천 원대'와 '만 원대'로 갈린다. 심리학자들이 실제 매장 수십만 명으로 확인한 '9의 힘' — 그런데 통하는 자리가 따로 있었다.
편의점 냉장고 앞에서 자주 본다. 9,900원. 만 원이 아니라 9,900원. 딱 100원 차이인데, "만 원짜리"라고 하면 손이 멈칫하고 "9,900원"이라고 하면 슬쩍 집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이 100원짜리 착시를 심리학자들은 오래 파왔다. 그런데 파고 보니 이건 '100원 싸서' 생기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무 가격에서나 통하는 것도 아니었다.
미국의 한 여성의류 카탈로그가 고객 9만 명을 3만 명씩 나눠, 똑같은 물건을 가격 끝자리만 다르게 붙여 팔았다(Schindler & Kibarian, 1996). $30.00으로 끝낸 쪽보다 $29.99로 끝낸 쪽이 매출이 8% 많았다. 흥미로운 건 여기다. 산 사람 수는 거의 같았다. 대신 산 사람이 더 많이 썼다.
더 결정적인 반전은 88센트였다. $29.99보다도 싼 $29.88로 끝낸 버전을 함께 돌렸는데, 이건 $30.00과 매출이 거의 똑같았다. 더 싼데 안 통했다. 손님을 움직인 건 '싼 값'이 아니라 '9라는 숫자'였던 것이다.
왜 하필 9인가. 우리 뇌는 가격을 왼쪽부터 읽고 거기에 닻을 내린다(왼쪽 자릿수 효과, Thomas & Morwitz, 2005). 9,900원은 왼쪽이 '9'라 9천 원대로, 10,000원은 왼쪽이 '1'이라 만 원대로 범주화된다. 100원 차이가 아니라 칸이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자릿수가 넘어가는 경계 — 9,900↔10,000, 990↔1,000 — 에서 9의 힘이 가장 세다. 반대로 3,690원과 3,590원처럼 왼쪽(3천)이 그대로면 손님은 차이를 거의 못 느낀다.
손님은 100원이 싼 걸 보는 게 아니다. '9천 얼마'와 '만 원'이라는 서로 다른 두 칸을 본다.
그렇다고 9,900원이 만능 열쇠는 아니다. 같은 주제의 다른 필드실험(Anderson & Simester, 2003)에서 9의 효과는 신상품에서 +22%로 컸지만, 예전부터 팔던 물건에선 +10%로 약했다. 손님이 적정가를 이미 아는 물건엔 잘 안 통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같은 실험에서 '세일'이라는 글자 한 줄의 효과가 끝자리 9의 효과보다 세 배 가까이 컸다. 숫자놀음보다 '할인 중'이라는 명시적 신호가 먼저다.
학계는 오히려 이 효과에 냉정해지는 쪽이다. 69개 연구·4만 명을 모은 최신 메타분석(Troll 외, 2024)은 9-끝자리 효과가 통계적으로 '작다'고 봤고, 출판편향을 걷어내면 거의 0에 가까웠다. 대규모 온라인 재현실험(Fenneman 외, 2022)에선 효과가 아예 나오지 않았다. 손님이 화면에서 가격을 찬찬히 볼 때는 착시가 잘 안 걸린다는 얘기다.
한 가지 더. 이 데이터는 전부 미국 것이다. 국내 유통가 끝자리를 뜯어본 연구(김가은·석관호, 2021)를 보면 한국은 값이 올라갈수록 오히려 딱 떨어지는 가격을 더 쓴다. 미국만큼 '9,900원'이 절대 공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내에서 실제 매출로 검증한 필드데이터는 아직 못 찾았다.
내가 눈여겨본 건 그 88센트다. 더 싸게 매겨도 안 통하고, 100원 비싸도 '9'면 통한다. 손님은 값을 계산하는 게 아니라 숫자의 '모양'을 읽는다는 얘기다. 그 순간만큼은 합리적 소비자가 아니다.
소상공인 입장에서 이걸 어떻게 쓰냐면 — 무작정 모든 가격에 9를 붙이는 게 아니다. '자릿수가 바뀌는 경계'를 노리고, 손님이 값을 잘 모르는 신상품에 걸고, 단골이나 프리미엄 상품엔 오히려 깔끔한 반올림으로 '떳떳한 가격'이라는 신호를 준다. 그리고 국내 실측이 없으니, 결국 확인할 곳은 당신 가게다.
당신 가게 가격표는 9로 끝나나요, 0으로 끝나나요? 왜 그렇게 정했는지, 혹은 바꿔봤더니 뭐가 달라졌는지 댓글로 들려주세요. 국내 사례가 모이면 다음엔 그걸로 한 편 잇겠습니다.
댓글 1개
하지만 요즘 워낙 쇼핑몰 가격이 29,900 39,900 등의 할인 공략이 익숙해지다보니 이벤트 상품의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브랜드마다 컨셉은 다르겠지만. 고급스러움을 위한 단위는 10,000 이 더 강한 힘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