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
2026. 07. 27
손님은 공돈이라고 더 쓰지 않는다 — 마음속 장부의 경제학
돈에 이름표가 붙으면, 손님은 '더' 쓰는 게 아니라 '거기에' 쓴다
Scout Lloyd
트렌드 스카우터 · marketingbase
마케팅 인사이트
지난 편에 한 독자가 이런 댓글을 남겼다. 넷플릭스, 도메인, 앱 자동결제처럼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은 자동결제로 걸어두고, 헬스클럽처럼 한두 달이면 시들해질 것은 굳이 묶지 않는다고. 같은 '내 돈'인데, 이 손님은 이미 머릿속에서 돈을 칸칸이 나눠 관리하고 있었다.
경제학은 이걸 마음속 장부, 심적 회계라고 부른다. 요지는 간단하다. 지갑 속 만원과 통장 속 만원과 적립된 포인트 만원은 회계상 똑같은 만원인데도, 사람은 저마다 다른 칸에 넣고 다르게 쓴다는 것이다.
마케팅은 오래전부터 이걸 믿고 움직였다. 포인트를 적립해주고, 캐시백을 쏘고, 상품권을 뿌린다. '공돈'처럼 느껴지는 돈은 손님이 더 쉽게 지갑을 연다는 통설이다. 그런데 내가 원문들을 하나씩 열어보니, 이 통설은 절반만 맞았다.
+3.84유로
음료 전용 바우처를 주자 음료 지출이
같은 금액 현금 바우처보다 늘었다
독일 레스토랑 552명 실측
70 → 28%
'딴 돈이니 더 걸어보자'는 30년 된 공돈 효과,
1천 명 재현에서 위험 선택이 되레 반대로
Royal Society Open Science 2025
+1.59달러
10달러 쿠폰 쓴 손님의 주문당 지출 증가,
그것도 평소 안 사던 품목에
온라인 마트 주문 3만 4천 건
먼저 통설이 맞는 쪽부터 보자. 독일의 한 와이너리 레스토랑이 손님 552명에게 8유로짜리 바우처를 나눠줬다. 한쪽은 '음료에만 쓸 수 있는' 바우처, 다른 쪽은 아무 데나 쓰는 현금 바우처. 결과는, 음료 전용 바우처를 받은 쪽이 음료에 3.84유로를 더 썼다. 돈에 '음료'라는 이름표를 붙였더니, 정말로 음료 칸이 커진 것이다.
미국 온라인 마트에서도 비슷했다. 10달러 쿠폰을 쓴 손님은 주문당 1.59달러를 더 썼는데, 흥미로운 건 그 돈이 대부분 평소 안 사던 품목 — 신선육류, 과일, 해산물 같은 — 으로 흘러갔다는 점이다. 이름표 붙은 돈은 씀씀이의 방향을 바꿨다.
여기까지면 통설이 이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통설의 가장 유명한 대목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공돈 효과'라는 게 있다. 카지노에서 딴 돈은 원래 내 돈이 아니었으니 더 과감하게 걸게 된다는, 심적 회계의 간판 사례다. 실험에서 먼저 30달러를 딴 사람은 다음 판에 위험을 감수하는 비율이 70%까지 올라갔다. 30년간 마케팅 교과서에 실린 숫자다.
그런데 2025년, 연구자들이 1천 명을 모아 이 실험을 그대로 다시 돌렸다. 결과는 70%가 아니라 28%. 방향이 뒤집혔다. 같은 해 나온 다른 연구 — 서른여섯 개 실험을 모아 분석한 — 는 더 냉정했다. 공돈 효과의 크기는 학계의 '잘 나온 결과만 발표되는' 쏠림을 걷어내면 사실상 0에 가깝게 줄었고, 실험실 밖 현장에서 잰 것일수록 더 약했으며, 2020년 이후 연구일수록 효과가 3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공돈이니 막 쓴다'는 극적인 이야기는, 대체로 실험실 조명 아래서만 선명했던 셈이다.
이름표는 손님을 더 쓰게 만들지 않는다. 어디에 쓸지를 정해줄 뿐이다.
두 발견을 겹쳐 보면 그림이 달라진다. 라벨링은 분명히 작동한다. 하지만 그건 손님이 총액을 더 쓰게 만드는 마법이 아니라, 돈을 특정 칸으로 몰아주는 장치였다. 독일 손님은 음료 '양'을 늘린 게 아니라 더 비싼 와인으로 갈아탔고, 미국 손님이 더 쓴 1.59달러는 총매출을 폭발시킬 액수가 아니라 '안 사던 품목'으로 새어 든 돈이었다. 이름표는 지갑을 크게 여는 게 아니라, 이미 열린 지갑의 방향을 튼다.
게다가 이 효과는 아무에게나 통하지 않았다. 독일 실험을 뜯어보면, 라벨의 힘은 계산에 어두운 손님들에게서만 뚜렷했다. 숫자에 밝은 손님은 '음료 바우처든 현금이든 어차피 내 돈'이라고 정확히 계산해 이름표를 무시했다. 손님이 똑똑할수록 라벨은 힘을 잃는다.
국내는 어떨까. 아쉽게도 한국에서 포인트나 상품권이 실제 지출을 바꾸는지를 제대로 실험한 1차 자료는 찾지 못했다. 대신 눈에 띈 숫자가 하나 있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안 쓰고 소멸된 카드 포인트가 약 3,160억 원(카드업계 집계). '공돈이니 빨리 써버린다'와는 정반대다. 이름표가 붙은 돈은 헤프게 쓰이기는커녕, 오히려 잊히고 묵혀졌다. 물론 이건 인과를 검증한 실험이 아니라 집계 통계이고, '방치'는 소비 심리가 아니라 그냥 포인트가 있다는 사실을 잊은 탓일 수도 있다. 다만 방향만은 분명하다. 라벨은 돈을 몰아주기도 하지만, 무관심 속에 가둬두기도 한다.
내가 주목하는 건, 지난 편 그 독자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자기 돈을 '계속 쓸 것'과 '시들해질 것'으로 나눠 관리하고 있었다. 손님은 마케터가 이름표를 붙여주기 전에, 스스로 머릿속에서 돈을 칸칸이 나눈다.
그러니 포인트·쿠폰·상품권을 '손님을 더 쓰게 하는 도구'로만 여기면 대체로 실망한다. 그건 총매출을 밀어 올리는 지렛대가 아니다. 어느 칸으로 손님을 데려갈지를 정하는 방향타에 가깝다. 안 팔리던 신메뉴, 손님 없는 비수기 시간대, 재고 남는 사이드 메뉴 — 여기에 이름표를 붙이면 돈은 그쪽으로 흐른다. 반대로 '아무 데나 쓰세요' 하고 뿌린 현금성 혜택은, 원래 잘 팔리던 것에 얹히거나 그대로 소멸된다.
소상공인 입장에선 질문이 바뀐다. '얼마를 줄까'가 아니라 '어디에 붙일까'다.
소상공인 · 마케터라면
- 포인트·쿠폰은 총매출을 늘리는 도구가 아니라, 특정 메뉴·시간대로 손님을 모으는 방향타로 쓴다
- 혜택은 '아무 데나' 대신 '이 메뉴에만', '이 시간에만'처럼 용도를 지정할 때 그 칸으로 몰린다
- 안 팔리던 신메뉴, 비수기 시간대, 재고 품목에 이름표를 붙여 손님 흐름을 만든다
- 계산에 밝은 단골에게는 라벨이 잘 안 통하니, 이들에겐 이름표보다 실질 할인이 낫다
- 발급한 포인트가 그대로 소멸되지 않도록 유효기간과 사용처를 눈에 띄게 안내한다
당신 가게의 포인트나 쿠폰은 손님을 '더' 쓰게 하고 있나요, 아니면 '어디에' 쓸지를 정해주고 있나요? 어떤 메뉴나 시간대에 붙였을 때 반응이 좋았는지 댓글로 들려주세요. 국내 사례가 모이면 한 편으로 잇겠습니다.
#마음속 장부#심적 회계#포인트 마케팅#상품권#공돈 효과#캐시백#소상공인#소비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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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낸 돈을 반년만 기억한다 — 매몰비용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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