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
2026. 07. 23
손님이 카드로 더 쓰는 건 안 사도 될 것뿐이다 — 지불의 경제학
그 유명한 "카드 쓰면 두 배" 실험은, 같은 논문 안에서 재현에 실패했다
Scout Lloyd
트렌드 스카우터 · marketingbase
마케팅 인사이트
지난 편 댓글에 이런 말이 달렸다. "편의점에서 한 손 가득 사도 5만원에서 10만원 사이입니다. 큰 부담이 가진 않죠." 정확한 관찰이다. 부담이 작으면 사람은 계산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부담의 크기를 정하는 게 금액뿐일까. 우리는 오래전부터 다른 답을 하나 더 갖고 있다. 현금이었으면 안 샀을 텐데. 카드를 긁으면, 요즘은 폰을 갖다 대면, 돈이 나가는 느낌이 옅어져서 더 쓰게 된다는 이야기다. 학계에는 이걸 부르는 이름까지 있다. 지불의 고통.
이번엔 그 통설의 출처를 찾아 원문을 열어봤다.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의 절반은 그 효과가 나오지 않은 실험에 대한 기록이었다.
113%
농구 티켓 경매에서 카드로 내라고 하자
평균 응찰액이 두 배 넘게 뛰었다
차이 없음
그런데 같은 논문 두 번째 실험에서는
카드와 현금이 똑같았다
2배
카드 손님 영수증에서 늘어난 건
안 사도 그만인 품목뿐이었다
첫 번째 숫자부터 보자. 1990년대 중반 보스턴, 경영대학원생 64명에게 셀틱스 농구 경기 티켓 두 장을 걸고 경매를 붙였다. 절반에게는 낙찰되면 현금으로 결제하라고 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카드로 결제하라고 했다. 누가 어느 쪽에 들어갈지는 무작위였고, 낙찰자는 실제로 돈을 냈다.
현금 쪽 평균 응찰액은 28달러 51센트, 카드 쪽은 60달러 64센트. 113% 차이였다. "카드로 내게 하면 지불의사가 두 배가 된다"는 문장이 세상에 퍼진 출처가 이 실험이다.
그런데 같은 표에 잘 인용되지 않는 칸이 있다. 이 연구는 티켓 말고 두 가지를 더 걸었는데, 응원 배너는 통계적으로 차이가 없었고 야구 티켓도 검정 방법을 바꾸면 차이가 사라졌다. 세 상품 중 두 검정을 모두 통과한 건 농구 티켓 하나뿐이었다.
진짜 대목은 그다음이다. 같은 저자들이 같은 논문 안에서 실험을 하나 더 했다. 이번엔 액면가 175달러라고 적힌 식사 상품권을 걸고 168명에게 물었다.
결과는 현금 77달러 8센트, 카드 71달러 78센트. 차이가 없었다. 한 조건에서는 오히려 현금 쪽이 13% 높게 나왔다. 카드 로고를 보여주기만 해도 지출이 는다는 더 오래된 가설 역시 이 데이터에서는 지지되지 않았다. 저자들은 자기 첫 실험을 자기 두 번째 실험에서 재현하지 못했다.
통설의 출처를 끝까지 읽으면, 저자들이 설명할 이론이 없다고 적어둔 문장이 나온다.
저자들이 내놓은 짐작은 이랬다. 첫 실험의 티켓은 값을 모르는 물건이었고, 두 번째 실험의 상품권에는 175달러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정가가 붙어 있으면 카드의 힘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다만 그들은 이걸 확인된 이론이 아니라 추측으로 적어두었다.
그럼 그 뒤 40년은 어땠을까. 2024년에 한 연구팀이 1978년부터 2022년까지 이 주제를 다룬 논문 71편을 전부 모았다. 측정치 392개, 참가자 1만 1,257명, 실제 거래 33만 8,513건, 17개국. 학술지에 실리지 못한 학위논문과 미발표 원고까지 일부러 끌어모았다. 발표된 것만 모으면 효과가 나온 연구 쪽으로 결과가 기울기 때문이다.
답은 "있긴 있는데 작다"였다. 카드로 낼 때 더 쓰는 경향은 확인됐지만 크기가 작았고, 연도가 최근일수록 뚜렷하게 약해지고 있었다. 연구팀의 해석은 간단하다. 다들 카드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같은 분석에서 효과가 아예 사라지는 자리도 하나 나왔다. 팁과 기부다. 여기서는 카드로 받든 현금으로 받든 차이가 없었다. 연구팀은 논문 말미에 자선단체와 팁으로 먹고사는 종사자에게 현금통을 없애지 말라고 적어두었다. 단말기가 더 나을 게 없다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카드가 지갑을 여느냐"는 질문이었다. 장사하는 사람에게 더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열린 지갑에서 나온 돈이 어디로 갔나.
2003년 한 연구자가 슈퍼마켓 앞에 서서 손님들에게 영수증을 얻었다. 219장을 현금·수표·카드로 나누고, 판정단 세 명이 품목마다 "꼭 사야 하는 것"과 "안 사도 그만인 것"을 갈랐다.
총액은 카드 쪽이 컸다. 32달러 96센트 대 43달러 49센트. 그런데 쌀이나 우유처럼 꼭 사야 하는 품목의 금액은 23달러 88센트 대 24달러 77센트로 차이가 없었다. 늘어난 건 전부 안 사도 그만인 쪽이었다. 9달러 8센트가 18달러 72센트로, 정확히 두 배.
2018년 베이징에서 같은 걸 훨씬 크게 해봤다. 슈퍼마켓 네 곳과 편의점 두 곳의 실제 계산대 영수증 2,531장. 간편결제로 낸 영수증이 총액은 컸지만, 꼭 사야 하는 품목만 놓고 보면 오히려 현금 쪽이 더 많았다. 15년 시차, 다른 나라, 열 배 큰 표본에서 같은 결론이 나왔다.
그러면 "카드는 안 아프니까 더 쓴다"는 설명 자체는 맞는 걸까. 2017년 네덜란드 중앙은행이 2,213명에게 온라인 장바구니를 담게 하면서 결제수단을 무작위로 배정했다. 카드 쪽이 군것질거리를 조금 더 담긴 했다.
그런데 같은 조사에서 결제가 얼마나 괴로웠는지도 물었다. 그 괴로움 점수와 실제로 담은 개수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게다가 괴로움은 낯선 수단으로 낼 때가 아니라 평소 쓰던 수단으로 낼 때 더 컸다. 현금파는 현금 낼 때가, 카드파는 카드 낼 때가 제일 아팠다.
덴마크에서는 82명에게 실제로 물건을 사게 하면서 참가비를 다르게 줬다. 현금을 손에 쥐여준 사람이 카드로 결제할 때는 응찰액이 37% 높았다. 그런데 참가비를 계좌로 넣어준 사람은 현금 조건과 차이가 전혀 없었다. 카드라서 더 쓴 게 아니라, 눈앞에 현금이 있는데 그걸 안 쓰고 카드로 대신 낼 때만 더 썼다는 뜻이다.
한국 이야기를 해보자. 한국은행이 매년 성인 3,551명을 직접 찾아가 묻는 조사가 있다. 결제 건수 중 현금 비중은 2013년 41.3%에서 2024년 15.9%로 떨어졌다. 11년 만에 3분의 1 토막이다.
그런데 같은 조사 안에 다른 표가 있다. 1만원 미만 거래에서는 아직 56.6%가 현금이다. 전통시장은 56.3%가 현금이고, 60대 이상은 열에 아홉 이상이 최근 한 달 안에 현금을 썼다. 한국은 이미 카드 사회지만 작은 금액과 오래된 골목에는 현금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다만 이 숫자를 거꾸로 읽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금액대별 표는 "카드를 쓰면 많이 쓴다"로도 읽히지만 "금액이 크면 카드를 쓴다"로도 똑같이 읽힌다. 어느 쪽이 원인인지 이 조사로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결제수단을 무작위로 배정해 실제 지출을 잰 국내 연구는 이번에도 찾지 못했다. 앞의 숫자들은 전부 남의 나라 데이터다.
그래도 이번에 확인한 건 분명하다. 카드 단말기는 객단가를 올려주는 장치가 아니다. 올라가는 건 안 사도 그만인 품목에서뿐이고, 그마저도 해마다 줄고 있다. 반찬가게와 정육점에 간편결제를 깔아도 손님이 고기를 더 사가지는 않는다. 디저트와 주류를 파는 가게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지난 편 댓글이 맞았다. 부담이 작으면 사람은 계산을 하지 않는다. 다만 순서가 반대인 것 같다. 결제수단이 부담을 지워준 게 아니라, 원래 부담이 없던 품목에서만 차이가 났다.
소상공인 · 마케터라면
- 디저트·주류·간식처럼 안 사도 그만인 걸 파는 가게라면 간편결제 도입이 객단가에 보탬이 된다. 쌀·반찬·생필품 위주라면 기대를 낮추는 편이 맞다.
- 팁이나 후원함, 기부함은 현금통을 그대로 둔다. 40년치 연구를 모아보니 딱 이 상황에서만 카드와 현금이 동등했다.
- 세트나 코스처럼 총액을 한 번에 부르는 가격은 카드와 잘 맞는다. 항목별 단가를 낱낱이 보여주는 방식은 그 효과를 지운다.
- 회수권·정기권 같은 선불은 커피나 수업처럼 쓰고 나면 사라지는 것에 붙인다. 오래 쓰는 물건은 열에 여덟이 받고 나서 내겠다고 답했다.
- 전통시장이거나 어르신 손님이 많은 가게라면 현금 응대를 줄이지 않는다. 60대 이상은 열에 아홉 이상이 최근 한 달 안에 현금을 썼다.
당신 가게에선 카드 손님과 현금 손님의 영수증이 다르던가요? 어떤 품목에서 갈리는지 댓글로 들려주세요. 사례가 모이면 국내 편으로 잇겠습니다.
#지불의고통#결제수단#간편결제#신용카드#현금결제#객단가#소비심리#소상공인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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